[도서리뷰] 01_당신의 취향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를 읽고

 당신의 취향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를 읽고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한 다큐를 보고, 유튜브에서 발견한 카페를 찾아가고, 인스타그램에서 본 브랜드를 입는다. 우리는 매일 수백 번의 '취향'을 소비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면 어떨까. 이 취향들, 진짜 내가 고른 거 맞아?

'아비투스(habitus)'라는 단어는 처음 들으면 괜히 주눅이 든다. 철학 강의 첫 시간에나 나올 법한 이름 탓이다. 하지만 나영웅 저자는 독자를 어렵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부르디외의 개념을 한국의 일상 언어로 번역해, 우리가 '나다움'이라고 믿어온 것들이 사실은 태어난 집, 다닌 학교, 자라온 동네에 이미 새겨진 흔적일 수 있다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거기에 자신의 소소하고 솔직한 과거까지 얹어서. 덕분에 아비투스는 철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내 몸에 붙어있던 무언가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책에서 특히 눈에 걸리는 건 '확정 취향'과 '독립 취향'의 구분이다. 아비투스는 전자, 즉 환경이 만들어낸 취향에 해당한다. 내가 좋아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내 의지가 아닌 조건이 고른 것이라는 이 깨달음은, 솔직히 조금 씁쓸하다. 동시에 그 취향이 사회에서 어떤 계급적 시선으로 읽히는지를 직시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저항감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경차를 타거나 빌라에 산다는 이유로 무시당한다는 식의 인터넷발 계급 피라미드는, 솔직히 과장된 고정관념에 가깝다. 저자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흥미로운 건 정량적인 접근이다. 즐겨 먹는 음식, 즐기는 운동, 최저 생계 비용 계산. 이런 수치들은 '나는 어느 정도를 원하고, 어느 정도를 살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

문화자본, 사회자본, 경제자본 — 명문대 학벌, 인맥, 판교 아파트로 환원되는 이 단어들은 카를 마르크스를 소환하면서도 우리 삶에 바짝 붙어있다. 읽다 보면 이 개념들이 가진 보이지 않는 폭력성이 느껴진다. 자본이 곧 계급이고 힘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이 그 논리를 강화하려고 쓰인 건 아니다. 오히려 3장에 나오는 챕터 제목 "취향을 구분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구분한다"에서 저자의 진짜 의도가 드러난다.

"상품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구별될 수 없다." — 127p.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이다. 아비투스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뭉툭한 칼'이다. 1963년에 등장한 이 개념을 여과 없이 21세기에 들이밀어, 학벌과 집과 차와 인맥으로 한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면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드라마 〈안나〉가 그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 실체보다 상징으로 사람을 빠르게 판단하는 것.

뭉툭한 칼은 갈아야 한다. 그것도 내 손에 맞게.

다양한 계층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과 영화에 우리가 끌리는 이유, 어쩌면 거기 있는 게 아닐까. 책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는다.

"톨스토이는 '취향이 인간 그 자체'라는 말을 남겼다. 온전히 한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취향 그 자체를 존중하겠다는 말과 같다." — 216p.

취향을 계급으로 읽기 전에, 취향을 통해 사람을 보는 법. 이 책은 그 순서를 다시 알려준다.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나영웅 저, 지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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