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칼럼]AI 시대에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AI의 등장은 적지 않은 무력감을 준다. 글쟁이가 아니더라도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이라면 그 감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잘 쓰는 능력’ 자체가 더 이상 고유한 경쟁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이미 현실의 일부가 되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낚시에 비유할 수 있다. 물가에 서서 기다리고, 서성이고, 때로는 허탕을 치면서도 결국 단어와 문장을 건져 올리는 일이다. 그 과정에는 분명한 쾌감이 있다. 적확한 단어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들인 시간과 고민이 문장으로 응집되고, 문단과 문단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생기는 감각이다.
문제는 그 낚시를 AI가 더 효율적으로 해낸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더 빠르게, 일정 수준 이상의 문장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낸다면, ‘나는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이 불안은 글을 쓰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 번역자, 편집자까지, 창작과 해석의 영역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확산되는 시대적 불안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당장의 일을 처리하는 데 집중하며,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상태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 불안을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우선 처리해야 할 일들에 밀려 유예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상태가 길어질수록 질문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지금의 방식이 충분한가, 아니면 다른 기준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 지점에서 기준은 조금 달라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쓰는가가 아니라,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다. 더 뛰어난 도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여전히 글 앞에 서 있는 이유를 묻는 일이다. 낚시의 성과가 아니라, 그 물가에 서 있는 이유가 기준이 되는 셈이다.
어떤 문장은 기다림과 서성임, 망설임 같은 비효율적인 시간 속에서만 길어 올려진다. 그 문장은 단순히 잘 쓰인 결과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통과해온 질문의 흔적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글은 완성도뿐 아니라, 발화의 주체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읽히게 될 것이다.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잘 쓰는 시대라면, 남는 구분은 결국 두 가지다. 누가 썼는지, 그리고 왜 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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