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칼럼]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깃발: 뱅크시의 조각작품 <깃발에 눈이 먼(Blinded by the Flag)>
편견과 고정관념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인지적 틀이 필요하다. 가장 보편적인 틀이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추상적인 도식인 고정관념이 개별 주체에게 투영되는 게 편견의 작용이다. 예를 들어, ‘흑인은 춤을 잘 출 것’이라는 생각이 막연한 고정관념이라면, 그 관념을 잣대 삼아 어떤 흑인에게 춤 춰보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편견이다.
결국 편견이란, 각종 데이터를 나름 종합해, 머릿속에만 머물던 관념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특정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는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다.
깃발이라는 인지적 지름길
인간이 본능적으로 편견을 갖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생존을 위한 효율성 때문이다. 우리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관이며, 모든 타인을 매번 백지 상태에서 탐구하는 건 인지적 과부하를 초래할 수 있다. 편견은 타인을 빠르게 분류하고 판단하게 함으로써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고, 더 많은 관계를 신속하게 정립할 수 있도록 돕는 지름길 역할을 수행한다.
편견의 진화
문제는 이 효율적인 도구가 확장성을 가질 때 발생한다. 개인의 파편화된 편견들이 모여 집단의 견고한 신념이 되고, 그 신념이 체계화되면 거대한 이념으로 탈바꿈하는 경우, 이런 이념은 더 이상 효율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 간의 경계를 긋고 상대를 타자화하며, 끝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의 가장 강력한 명분이 된다. 뱅크시의 작품 속 남성을 덮친 거대한 깃발처럼, 이념은 개인의 시야를 가린 채 공동체를 파멸로 이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자각
뇌의 가소성 측면에서 인간은 편견이라는 틀 없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나 그 틀이 자신의 눈을 완전히 가려버린다면, 우리는 자신이 나락을 향해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편견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신념이나 판단이 일종의 편견일 수 있으며,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자각이다.
스스로에게 품는 작은 의구심의 틈새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일이 된다면 극단적인 자를 리더로 뽑을 이유도 없고 그런 자들의 이념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사진은 런던에 있는 뱅크시의 조각작품 <깃발에 눈이 먼(Blinded by the Flag)>이다. 런던 중심부의 워털루 플레이스(Waterloo Place)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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