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칼럼]AI의 ‘초벌’이 전문가에게 ‘오답 노트’가 될 때

최근 읽은 영국 단편 소설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했다. 분명 술을 못 마신다는 인물이 ‘에일 맥주’를 주문하고, 동행은 보드카를 마셨다. 엥? ‘영국은 15도 이하는 술로 안 치나?’ 싶어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진저에일(탄산음료)’을 맥주로 오역한 것 같다는 귀띔을 들었다. 순간 무릎을 탁쳤다.


어제 본 다른 작품에서는 “얼굴이 나이에 비해 잘 보존되었다.”라는 문장을 만났다. 문체가 갑자기 변한 것도 웃겼는데 동안이라는 의미는 전달되긴 됐다. 웃긴 ai 번역은 그나마 잘못 된 걸 인지라도 하지 정말 완전히 잘못 됐는데 완전히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원문과 문단별로 비교해도 아직까지 ai는 거짓말을 잘한다. 문단 별로 지난한 질문하기도 쉽지 않다. 


좋은 작품을 찾으려면 플롯과 구성을 먼저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AI 번역의 도움으로 먼저 읽는다. 이 ‘초벌’을 번역가님께 드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여쭤본 적도 있지만, 오히려 원문과 대조하며 의구심이 괜히 더 생겨 오류를 잡느라, 문화적 차이로 발생하는 오역일까봐, 그 뒷단의 내용을 팩트체크하느라, 등등 오히려 더 일을 꼬이게 만드는 게 될 수도 있다. ai초벌 번역이 오히려 일감만 더 늘리고 번역자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자존심 상하는 결과가 된다는 걸 나도 번역 책 작업을 하면서 상세히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상대방의 일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으면 오해하기 쉽고 실례를 범하게 된다. 


이는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ai로 작업한 파일을 결과물이라며 넘겨준다면, 인쇄 편집 디자이너는 결국 인디자인이나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로 처음부터 다시 따라 만들어야 한다. 그간 일해왔던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스스로 수단으로만, 기계로, 전락한 기분이 들어 현타가 올 수 있다. ai가 제대로 생성하지 못한 부분을 수정하고 나노 단위의 노가다를 하고 나면, 차라리 다 ai하지 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ai 사용에는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때론 AI 결과물을 인간이 수정하는 게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고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스스로 상황을 파악해서 ai를 이용해 디자인 할 수는 있어도 협업할 때는 협업자가 디자인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게 아닌 이상 어디까지나 참고용 ai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문학의 행간을 채우는 정교한 번역이나 맥락에 맞는 디자인을 만들 때는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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