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칼럼]모자무싸 후기-사랑하면 같아지고 싶은 이유
<사랑하면 같아지고 싶은 이유>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을 때, 단순히 사회적 배경이나 경제적 조건만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드는 건 아니다. 비슷한 삶의 궤적을 공유하거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그 안락함이 주는 평온함이 인간을 덜 불안하게 만들고 덜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 안에서 진짜 성숙함이 요구되는 순간은 서로의 삶이 변했을 때다. 누군가 더 잘 되거나 누군가 더 넓은 세계로 갔을 때, '시선의 높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각자가 마주하는 삶의 무게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깊이가 변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저 사람은 그렇지 않았는데... 왜 저렇게 변해버렸을까?"라는 서운함은 곧 관계의 본질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쁨"의 크기를 온전히 함께 느끼고 싶다는 치열한 열망이다.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나 역시 똑같이 공감해 주려면, 나만의 세계를 상대와 맞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식이 자라서 부모와 대등하게 삶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이자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그런 애틋한 마음과도 닮았다.
이러한 차이를 단순히 어떤 면에서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한가'라는 수직적인 이분법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자세히 보면 사실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더 쓰라리고 더 위험하고 더 넓고 깊은 세계를 경험해 보았는가'라는 성장의 차이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넓은 세상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이의 세계에 잠시 발을 맞추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계급성이 고착된 관계라면, 그런 관계는 오랜 시간 지속되기 어렵다. 진정한 교감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나 배려가 아니라, 서로의 내면적 지평이 넓어져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같은 주파수’ 위에 설 때 비로소 완성된다.
결국 사랑하면 닮아가고 싶고, 상대가 보는 세상을 나도 함께 보고 싶어진다. 우리는 왜 (홍보나 광고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내가 보고, ‘존재가 변했던 드라마, 책, 영화’ 등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권하는 걸까? 그것은 단순한 추천이 아니다. 상대도 나의 슬픔, 아픔, 기쁨을 함께 느끼고 그의 세계 역시 나와 함께 깊고 넓어졌으면 하는 내밀한 아우성이다. 그래서 때론, 상대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사랑은 강요나 잔소리라는 이름의 무례함이 되기도 한다.
내가 성장해 상대의 세계에 가닿았을 때, 혹은 상대가 내 세계만큼 넓어졌을 때, 그 성장을 내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무조건적인 축하야말로 서로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건 인사치레로 하는 축하의 메시지가 아니다. 눈빛만 봐도 ‘너도 이제 내 슬픔을, 내 고통을 알게 되었구나. 나도 너를 진심으로 이해해.’라는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같았다가 달라졌다가, 다시 같아지는 기이한 여정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아닌지를.



#모두가자신의무가치함과싸우고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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